메뉴 건너뛰기

목회칼럼

조회 수 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는 양봉을 하셨습니다. 봄이면 아카시아 꽃부터 시작해서 꽃이 많이 핀 산속 깊은 곳까지 벌통을 옮기며 부지런히 일하셨는데도 수입은 별 볼 일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양봉업자들이 더 쉬운 방법으로 더 많은 꿀을 채밀해서 박리다매하여 수익을 창출한데 반해 저희 아버지의 꿀은 채밀하는 양도 적을뿐더러 가격도 더 비쌌기 때문에 경쟁에서 뒤처졌던 겁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분통을 터뜨리곤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꿀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다른 양봉업자들의 꿀은 벌들에게 설탕물을 먹여서 만든 '사양꿀'이고 당신의 꿀은 설탕물을 일체 먹이지 않은 '천연꽃꿀'인데도 사람들이 그걸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은 정밀분석검사를 통해 사양꿀과 꽃꿀의 구분이 가능하고 그것을 꿀병에 표기한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벌꿀을 판매할 때 그런 표기법이 없었고 양봉업자의 말만 믿고 꿀을 구입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연꽃꿀’이라고 주장하면 그런 줄 알고 구입했던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설탕물이라고 해도 벌의 몸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꽃꿀과 비교해서 맛은 물론이고 효능까지도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시장의 상황이 그랬지만 고지식했던 아버지는 한결같이 꽃을 따라 설악산 산기슭으로 벌통을 옮기며 그곳에서 한두 달씩 텐트생활을 하시며 꿀을 채집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산속에서 함께 생활했던 기억이 있는데, 커다란 텐트 안에서 종일토록 책을 읽으며 지루한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수고를 통해 만들어진 아버지의 꽃꿀은 시장원리에 따라 사양꿀과 비슷한 가격에 팔렸고 결국 아버지의 양봉업은 자연스럽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ㅠㅠ

저는 설교에도 사양꿀과 꽃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이 설탕물을 먹고 꿀을 만들어내듯 설교자가 다른 이들의 설교를 듣고 생산해낸 사양꿀 같은 설교가 있고, 직접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과 기도를 통해 생산해 낸 천연꽃꿀 같은 설교가 있습니다. 설교를 먹는 사람들은 구분하지 못하지만 설교를 하는 사람은 압니다.(“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요 2:9)

설교자라면 언제나 꽃꿀을 생산하고 싶지만 꽃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먹여야 할 사람들이 있기에 일정한 양의 꿀을 생산해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워질 때 설교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양꿀을 먹일 것인가, 굶길 것인가, 아니면 가짜꿀을 만들어 먹일 것인가?

꿀 중에는 아예 벌의 몸을 거치지 않고도 조청 같은 것을 사용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짜꿀도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통과하지 않은 설교가 바로 가짜꿀 같은 설교입니다.

다른 이들의 설교나 글을 그대로 카피하는 것은 가짜꿀입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자신의 영혼을 통과해서 말과 삶을 통해 흘러나오게 되면 그것은 사양꿀입니다. 영혼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생산된 꽃꿀만은 못하지만 사양꿀도 벌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꿀도 먹는 사람들에게 힘을 줍니다. 왜냐하면 그 설교도 설교자의 영혼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설교자로 부름 받았을 때, 그러니까 아동부 설교자일 때 저는 종종 다른 이들의 설교집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 설교했습니다. 그런 방법을 통해 어린이 설교법을 익혔습니다. 중고등부 설교자로 섬길 때에는 참고할 만한 설교집이 없어서 꽃꿀을 만들어내느라 매주 고생이 심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설교들 중에는 제 영혼을 터치할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짜꿀은 만들고 싶지 않아서 매주 썰렁한 개그와 함께 꽃꿀을 생산해 내었습니다. (꿀맛은 별로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성인들을 위한 설교를 준비할 때에는 이동원목사님의 설교를 흉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설교스타일이나 내용이 제게 거부감 없이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잘해야 1년에 서너 번 설교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한두 편의 설교를 영혼 깊숙히 받아들여 되새김질 하고 딜리버리를 흉내냈습니다. 사실 신학교 때 설교학 시간이 있었지만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딜리버리 방식은 저와는 맞지 않았고 심지어는 거부감까지 들었기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폐기해 버렸습니다.

미국에 유학 온 후, 처음 부목사로 사역했던 교회는 담임목사님이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특별히 그분에게 설교지도를 받은 적은 없지만 그 설교를 수년 동안 듣다 보니 딜리버리 방식에 있어서는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른여섯에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 위기가 왔습니다. 매 주일 설교와 주중예배, 새벽예배 설교까지 계속해서 꽃꿀을 생산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꿀을 생산해야겠다는 부담이 커서 매주 토요일은 거의 밤을 새우는 경우까지 생겨났습니다.

성도들은 목사가 게으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설교자로 살아보면 금방 이해하게 됩니다. 큐티는 나 혼자 먹으면 되는거지만 설교는 다른 사람을 먹여야 하는 일입니다. 혼자서 꽃 찾아서 꿀 빨아 먹는 건 매일 매순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꽃이 없으면 굶어도 됩니다. 그러나 '먹여야 하는 일'은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다가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을 하면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1년에 7-8주를 제가 본받고 싶은 훌륭한 설교자의 메시지를 합법적으로 베껴서 하는 기회를 얻은 겁니다. 릭워렌목사님의 설교는 너무 훌륭했고 제 영혼을 터치했습니다. 그 설교가 제 영혼을 통과해서 다시금 제 언어로 선포되어질 때 성도들은 괜찮은 사양꿀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기회를 통해 설교문을 작성하는 좋은 방법을 배웠습니다. '완전히 창의적인 설교를 하겠다'고 '어떤 설교집도 읽지 않고 어떤 설교도 듣지 않는다'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아주 탁월하거나, 아니면 게으른 겁니다.

저는 후배 설교자들에게 창의적이 되기 위해 먼저 좋은 모방부터 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영혼을 통과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리고 그런 설교자를 만난다면 붙좇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흉내내되 먼저 그 메시지를 잘 삼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설교 포멧을 따라하고 딜리버리 방식을 흉내내는 가운데 점차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설교스타일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자신이 지금 생산해내는 것이 꽃꿀이 아닌 사양꿀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밝히지 않으면 설교자의 정직성과 연결되어져서 설교를 먹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키칠 수 있습니다.

저는 종종 제가 했던 설교를 반복해서 합니다. '새로 온 성도들'을 위해, '듣고 잊어버린 성도들'을 위해, '반복해서 들으며 다시 한번 새겨야 할 성도들'을 위해 지나 간 설교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반복한다고 해서 대충하는 법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제 영혼을 통과시켜서 다시 정리하고 지금 이순간의 회중들을 위해 이 순간의 언어로 풀어서 설교합니다.

가끔 40일 캠페인도 빌려와서 하는데, 제가 직접 만들어서 하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8주간의 캠페인을 했는데, 모든 소그룹교재와 설교를 생산해내느라 몇 배의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교재로 해서 만든 캠페인인데, 필요한 분들이 있으면 그대로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꽃꿀만을 고집했던 저희 아버지조차도 채밀을 끝낸 후에는 '겨울을 나야하는 벌들의 생존'을 위해 설탕물을 주셨습니다. 설교의 겨울을 지내시는 분들이 있다면 설탕물이라 생각하시고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성도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심방과 행정, 새벽예배, 성경공부, 주일예배까지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꿀을 생산해내는 목사님들에게 너무 부담을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약해졌다고 생각되면, 그래서 꽃꿀이 생산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충전할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창의적인 설교는 ‘부지런한 연구나 기도생활’을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종종 ‘멍 때리는 휴식’의 시간을 통해서도 주어집니다. 아니 그런 여백의 시간이 없으면 창의력 자체가 죽어버리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꽃꿀이든 사양꿀이든,...제 설교를 먹고 힘을 내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시온교회 성도님들, 그리고 제가 설교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고 충분한 쉼의 시간을 주시는 시온교회 장로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여러분 덕분에 겨울도 잘 버티고 가짜꿀 만들지 않으며 섬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힘들면,...

종종 쉬러 가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 사양꿀 설교, 꽃꿀 설교 2021.04.28 0
6 목회서신_성전에서의 예배를 재개하며 2020.06.26 139
5 자연재해와 전쟁의 소문 속에서 우리가 함께 드리는 기도 2017.09.08 766
4 들으라 2016.12.09 746
3 나는 신실하지 못합니다 2016.09.23 827
2 내게 줄로 재어 주신 구역 file 2016.08.10 1133
1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게 되면,.. 2016.05.13 883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위로